전 연인을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은 여성이 무고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강간 관련 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사건 이후에도 상대방과 교제를 이어가거나 즉시 항의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피해 신고가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성폭행 고소에 대해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신고 내용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고소인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을 신고했다는 적극적인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서 전 연인이 자신의 신체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3자에게 반포했다는 고소 부분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 없이 추측만으로 신고했다는 원심의 무고죄 판단을 수긍했다.
대법원 제2부는 2026년 10월 8일 무고 혐의 사건(2026도1865)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증거 부족과 허위 고소를 구별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고소인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로 단정해 신고할 경우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 데이팅 앱으로 만난 연인…결별 후 강간·영상 반포 혐의로 고소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2020년 9월경 데이팅 앱을 통해 남성 B씨를 알게 됐으며, 2021년 1월경부터 같은 해 3월 말경까지 교제했다.
A씨는 2021년 12월 경찰에 B씨를 상대로 강간 및 영상 반포 관련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B씨가 2021년 2월 20일, 3월 6일, 3월 20일 세 차례에 걸쳐 술에 알 수 없는 물질을 넣어 자신을 항거불능 상태에 빠뜨린 뒤 성관계를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또한 B씨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의사에 반해 지인에게 전송했다는 내용도 고소장에 포함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결과 강간 등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6월 29일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고, A씨의 이의신청에 따른 보완수사 이후인 2023년 2월 9일에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다시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B씨는 A씨의 고소가 허위라며 무고 혐의로 고소했고, A씨는 무고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 1심은 강간 관련 무고 무죄…2심은 유죄로 뒤집어
1심 법원은 강간 관련 무고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신고한 강간 피해 사실이 객관적으로 허위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반면 영상 반포 관련 무고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A씨가 B씨의 영상 반포 사실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 없이 막연한 추측으로 고소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강간 관련 무고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은 A씨가 강간 피해를 주장한 시점 이후에도 B씨와 여행을 가거나 성관계를 갖고 연인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사건 직후 강간에 관한 직접적인 항의를 하지 않았으며, 당시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해 주장의 신빙성을 부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발 감정에서 A씨가 주장한 약물 사용을 뒷받침할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판단에 반영했다.
항소심은 A씨가 B씨의 혼인 경력과 자녀의 존재 등 자신에게 숨겨졌던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배신감과 분노로 허위 피해사실을 만들어 고소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이 있다고 봤다.
■ 대법원 “불송치 결정은 무고의 적극적인 증거가 아니다”
대법원은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 내용이 객관적인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신고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허위 신고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성폭행 사건은 당사자 사이의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범행 여부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거나 법원이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고소인이 허위사실을 신고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강간 고소에 대한 불송치 결정이 고소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근거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무고죄의 허위성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자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과도 연결된다.
■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획일적 판단 경계
이번 판결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성폭행 피해를 주장한 사람이 사건 이후에도 상대방과 연인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정의 의미였다.
원심은 A씨가 B씨와 교제를 지속하고 여행을 다녀오는 등 평범한 연인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을 피해 주장이 허위라는 근거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개인의 성향, 상대방과의 관계, 사건 당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 당시 B씨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간 피해를 의심하면서도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해명이 당시의 교제 관계와 구체적인 정황에 비춰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사건 직후 상대방에게 항의하지 않았거나 관계를 지속했다는 사실만으로 피해 주장이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을 일정한 전형에 맞춰 평가하는 방식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 카카오톡 항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대법원이 주목한 정황
대법원은 A씨가 실제로 성적 침해를 경험했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정도 검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3월 20일 B씨와 이른바 관전클럽을 방문한 이후, B씨가 자신과 성관계를 하면서 다른 여성의 신체를 만진 행동 등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A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당시 상황에서 느낀 수치심과 충격, 거부감 등을 표현했다.
B씨 역시 이에 대해 사과하면서 다시는 해당 장소에 가지 않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또한 A씨는 결별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과정에서 불면과 악몽, 심리적 고통 등을 호소했다.
2021년 5월에는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술을 마신 뒤 기억이 끊겼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B씨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후 변호사를 고소대리인으로 선임해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대법원은 A씨가 고소 이전부터 당시 경험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는 사정을 고려했다.
특히 A씨가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약물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모발 등의 감정을 수사기관에 요청했다는 점도 살폈다.
대법원은 이러한 정황을 종합할 때 A씨가 강간 피해 사실을 허위로 만들어 고소했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 약물 검출되지 않았어도 피해 주장이 곧바로 허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발 감정 결과가 중요한 증거로 다뤄졌다.
감정에서는 A씨의 강간 고소 내용을 뒷받침할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약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A씨의 강간 피해 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강조한 것은 약물 사용 여부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고소인이 약물 사용에 관한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신고했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B씨가 이미 A씨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진 연인 사이였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장소에서 약물 등을 이용한 성관계를 시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다.
다만 이번 판결이 실제 약물 사용이나 강간 범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해당 범행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A씨의 신고가 허위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강간죄 성립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형법상 강간죄 성립 여부를 구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현행 형법상 강간죄는 법률이 정한 범죄 성립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형법상 강간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와 형사상 범죄 성립 여부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특히 A씨가 문제 삼은 관전클럽에서의 성행위는 그 구체적인 경위에 비춰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약물 사용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A씨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인식한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는 형사처벌에 필요한 법적 요건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과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성적 경험을 했을 가능성을 구별해야 한다는 의미다.
■ 영상 반포 관련 무고 혐의는 판단 달라…“막연한 추측만으로 고소”
반면 대법원은 영상 반포 관련 무고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의 유죄 판단을 수긍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 A씨의 신체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3자에게 반포한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다.
A씨 역시 수사기관에서 B씨가 실제로 영상을 반포했는지 알 수 없지만 평소 행동 등에 비춰 다른 사람에게 보냈을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대법원은 객관적이거나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막연한 추측으로 영상 반포 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무고죄의 고의는 반드시 허위라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고자가 허위일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사실로 신고하는 경우에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은 영상 반포 고소 부분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신고와 무고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다만 강간 관련 무고 부분을 파기해야 하고, 그 부분이 나머지 유죄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어 원심판결 전체를 파기환송했다.
따라서 영상 반포 관련 무고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과 원심판결 전체의 파기환송은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
■ TJ뉴스 법률분석① 성폭행 사건의 불송치와 무고죄 성립은 왜 다른가
이번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폭행 사건에서의 증명 대상과 무고죄 사건에서의 증명 대상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성폭행 사건에서는 피고소인이 실제로 법률이 정한 성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가 문제 된다.
반면 무고죄 사건에서는 고소인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을 신고했는지, 그 허위성에 대한 고의가 있었는지 등이 문제 된다.
성폭행 혐의가 증거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해당 범죄가 형사처벌에 필요한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고소인이 실제로 겪지 않은 일을 꾸며 신고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 두 가지 판단을 혼동하면 성폭행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고소인이 오히려 무고죄로 처벌받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객관적 근거 없이 허위사실을 만들어 상대방에게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는 행위까지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원래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증거 부족과 고소 내용의 객관적 허위성에 관한 증명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 TJ뉴스 법률분석②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을 일반적인 경험칙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이유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과 사건 전후의 행동이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행동을 특정한 유형으로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사건 이후 상대방에게 즉시 항의하지 않았거나 관계를 유지한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작용할 수 있다.
상대방과의 감정적 관계, 혼인에 대한 기대,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혼란, 기억의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A씨가 B씨와 결혼을 희망했던 사정과 교제 당시의 구체적인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모든 진술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피해자의 진술을 평가할 때는 객관적 증거와 진술 내용, 사건 전후의 구체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피해자라면 반드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 TJ뉴스 법률분석③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형사상 강간죄의 구별
이번 판결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와 형사상 강간죄 성립 여부가 서로 다른 법적 판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성적 행위 여부와 상대방 등을 결정할 권리다.
그러나 형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법률과 판례가 정한 범죄 성립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따라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성적 경험을 했더라도 형사처벌에 필요한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관전클럽에서 이루어진 성행위가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약물 사용에 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성적 침해 자체를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결국 형사상 범죄 성립 여부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를 구별하는 것은 무고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TJ뉴스 법률분석④ 무고죄에서 허위사실의 증명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무고죄는 타인에게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게 허위사실을 신고하는 범죄다.
형법 제156조에 규정돼 있다.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 내용이 객관적인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고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허위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무고죄의 성립을 주장하는 검사는 허위사실 신고와 고의 등 범죄 성립요건을 증명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강간 고소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한다는 적극적인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영상 반포 고소 부분에서는 객관적인 근거 없이 추측만으로 사실을 단정해 신고한 구체적인 사정이 인정됐다.
이처럼 하나의 고소장에 여러 혐의가 포함돼 있더라도 각 신고 내용의 허위성과 고의는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 TJ뉴스 법률분석⑤ 고소인의 추측과 사실 신고는 어디에서 구별되는가
이번 판결에서 영상 반포 관련 무고 혐의가 인정된 이유는 단순히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법원은 A씨가 실제 반포 여부를 알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의 평소 행동에 근거한 추측을 사실처럼 신고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수사기관에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해 고소하는 행위 사이에 법적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 피해가 의심되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고소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과 추정하거나 의심하는 내용을 구분해 진술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 역시 고소인이 직접 확인한 사실과 수사를 통해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의혹을 구분해 조사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처럼 사진이나 동영상의 촬영·전송 여부를 당사자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사건에서는 객관적인 자료와 진술의 구체성이 중요하다.
다만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의혹 제기가 무고가 되는 것은 아니며, 허위성에 대한 인식과 신고 경위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TJ뉴스 법률분석⑥ 성폭력 피해 신고와 무고죄 수사, 균형 있는 판단 필요
성폭력 피해 신고를 보호하는 것과 허위 고소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는 것은 모두 형사사법 절차에서 중요한 과제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거 부족으로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고죄 처벌의 위험에 놓인다면 정당한 피해 신고까지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객관적으로 허위인 사실을 알면서 상대방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하는 행위는 무고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고소 내용별로 허위성에 관한 적극적인 증거가 있는지, 신고자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당시의 관계와 상황이 어떠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행동을 획일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동시에 객관적인 증거에 근거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 결론…“범죄가 입증되지 않은 것과 허위 신고가 입증된 것은 다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폭력 사건에서 불송치 결정과 무고죄 성립 사이의 법적 경계를 다시 확인한 사례다.
대법원은 강간 고소사실에 관한 불송치 결정, 사건 이후 교제 지속, 즉각적인 항의 부재, 약물 감정 결과 등을 근거로 고소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한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영상 반포 관련 고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 없이 추측으로 신고한 사정에 비춰 무고죄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이는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되지만,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로 단정해 신고하는 행위 역시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A씨의 모든 무고 혐의에 대한 최종 무죄판결로 해석하거나, 당초 고소한 강간 범행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확정한 판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번 판결이 남긴 가장 중요한 법적 메시지는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고소인이 허위사실을 신고했다는 사실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이러한 구별은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권리와 피고소인의 방어권을 함께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 본 기사는 대법원 판결문에 기재된 사실관계와 법원의 판단을 토대로 작성했으며, 불송치 결정과 무고죄 성립의 차이,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강간죄 성립의 구별 등에 관한 TJ뉴스의 독자적인 법률 분석을 추가했습니다. 판결문에서 확정하지 않은 범죄사실은 사실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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