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의 즉흥성과 신체의 움직임을 추상회화로 확장
읽을 수 없는 문자와 반복되는 선이 빚어내는 ‘행위와 생성의 회화’
경남 양산 통도사 문화권에서 지난 10여 년간 전시와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온 스페이스 나무가 경상남도 등록 사립미술관인 ‘스페이스 나무 미술관’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스페이스 나무 미술관은 개관을 기념해 2026년 10월 20일부터 11월 29일까지 프랑스 현대미술가 탕크(TANC, 1979~)의 초대전 『선(線)은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행위와 생성의 회화’이다.
탕크는 2019년 상하이 현대미술관(MoCA Shanghai)의 특별전 《Post Contemporary – Urban Graphic 7019》에 선정된, 현대 그래피티 아트를 대표하는 국제 거리예술가 8인 중 한 명이다. 이번 양산 초대전은 그래피티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독자적인 추상회화의 언어로 발전시켜 온 탕크의 작품세계를 다채롭게 조명한다.
작가 탕크의 화면에서는 붉은색과 푸른색, 보라색의 선들이 겹치고 교차한다. 문자처럼 보이지만 해독할 수 없는 필획들은 신체의 속도와 압력, 순간적인 움직임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강렬한 색채의 리듬을 형성한다.

기호에서 벗어난 선, 독립적인 조형언어로 태어나다
본래 문자는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그러나 문자가 본래의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읽을 수 없는 형상으로 남을 때, 그 선은 어떤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갖게 될까. 탕크의 회화는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필획은 문자적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특정한 단어나 문장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의미를 '읽는' 문자가 감각적으로 '보는' 문자로 전환되고, 뜻을 전하던 기호가 신체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독립적인 조형언어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선의 굵기와 방향, 색채의 중첩과 반복이라는 구조에 집중한다. 비슷한 움직임이 되풀이되는 듯하지만 캔버스 위 동일한 선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세한 차이들이 화면에 축적되면서 새로운 형상과 질서가 끊임없이 출현한다.

파리 그래피티 문화에서 오토마티즘과 서예적 획으로
탕크는 1990년대 프랑스 파리의 그래피티 문화 현장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체득한 즉흥성과 자발적인 속도감은 캔버스 위에서도 강렬하게 이어지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히 그래피티를 실내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문자와 선, 색채 간의 유기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추상회화 언어를 구축해 왔다.
그의 미학은 의식적인 통제를 최소화하는 오토마티즘(Automatism, 자동기술법)적 표현과 긴밀히 연결된다. 거침없는 스트로크에는 작가 손의 속도와 눌림, 순간의 감각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동시에 즉흥적인 선들 사이에는 밀도와 방향, 색채의 균형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축적된 감각이 동시 작동한다.
문자 형태를 띤 필획은 동아시아 서예에서 획이 신체의 에너지를 시각화하는 방식과도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한다. 다만 탕크는 기존의 문자 체계나 서법에 얽매이지 않고 선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주력한다.
반복될 때마다 변주되는 필획의 관계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관점에서도 유의미하게 해석된다. 이는 작가가 특정 철학을 직접 표방했다기보다, 동일하지 않은 반복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형상이 생성되는 작품의 비평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세계적 거리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현대 추상
2019년 상하이 현대미술관(MoCA Shanghai)은 《Post Contemporary – Urban Graphic 7019》를 통해 세계 거리예술의 흐름을 이끄는 대표 작가 8인을 선정했다. 탕크는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OBEY), 존원(JonOne), 빌스(Vhils), 엠샤(M. Chat), 존 마토스 크래시(John Matos Crash), 제브스(ZEVS), 라틀라스(L’Atlas) 등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함께 참여해 주목받았다.
당시 전시는 거리와 지하철벽을 채우던 그래피티가 캔버스와 미술관 영역으로 진화해 온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탕크의 참여는 그의 작업이 국제적인 스트리트 아트와 현대 추상회화의 접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 왔음을 입증하는 주요 이력이다.
따라서 이번 스페이스 나무 미술관 초대전은 세계적 아티스트들과 함께 거론되는 탕크의 회화를 국내 관람객이 현장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해독을 넘어 감각하는 예술적 경험
스페이스 나무 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이 숨 쉬는 공간에서 국제 현대미술의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꾸준히 소개하고자 한다. 탕크의 회화는 현대 추상미술이 반드시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것만은 아님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관람객은 화면 위를 자유롭게 교차하는 선의 궤적을 따라가며 색채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느끼고, 캔버스에 남아있는 작가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다. 작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독하려 애쓰기보다, 선과 색채가 맺는 생생한 관계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이번 전시를 즐기는 최고의 관람 포인트다.

「선(線)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프랑스 현대미술가 탕크(TANC) 초대전 개최
전시기간: 2026년 10월 20일 ~ 11월 29일
전시장소: 스페이스 나무 미술관 (경남 양산)
주요내용: 상하이 현대미술관 국제 거리예술가 8인 특별전 참여 작가 탕크의 국내 초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