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에는 시간이 쌓인다. 씨앗을 심는다고 곧바로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자리를 잡았다고 모든 식물이 같은 모습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옮겨 심어야 하고, 가지를 잘라내야 하며, 아무 변화가 보이지 않는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치유농업사이자 가드너인 함은미 작가는 이러한 정원의 시간을 자신의 삶과 겹쳐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창작제작소 선은 전북 부안에서 치유정원 ‘포레도’를 일구고 있는 함은미 작가의 첫 에세이 『포레도, 세 가지 이름으로 지어 올린 정원』을 출간했다.
책을 관통하는 세 단어는 ‘믿음·사랑·소망’이다. 저자가 세 아이에게 지어준 이름인 동시에 삶의 여러 변화를 지나며 붙잡아온 가치다. 책은 믿음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고, 사랑으로 상처를 돌보며, 소망으로 다시 일상을 세워가는 과정을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낸다.
함 작가는 심리상담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한 뒤 가족과 함께 전북 부안에 정착했다. 귀농과 창업, 육아를 병행하며 포레도를 일궜다. 정원을 만드는 과정은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과 가족의 시간, 예상하지 못한 상실과 다시 일상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정원 곳곳에 함께 쌓였다.
특히 2019년 발생한 화재는 삶의 터전을 크게 바꿔놓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후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선 시기와 오랫동안 쌓아온 이름과 삶이 흔들리는 시간도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경험을 극적인 성공이나 극복의 이야기로 포장하기보다 당시 자신이 무엇을 잃었고, 다시 무엇을 붙잡았는지를 차분하게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정원은 중요한 매개가 된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씨앗을 심고 식물이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자신의 일상을 다시 세우는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 운동과 가족의 사랑, 식물을 돌보며 익힌 기다림 역시 책의 주요 이야기로 등장한다.
책은 ‘믿음의 땅’, ‘폭풍의 계절’, ‘사랑의 정화’, ‘소망의 기쁨’, ‘포레도: 숲의 고백문’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됐다. 식물의 이식과 재식간격, 수관 폭 등 실제 정원을 가꾸는 과정에서 접하는 원리를 삶의 경험과 연결한 ‘가드너의 치유 인사이트’도 각 장에 담았다.
정원에서 식물마다 필요한 공간이 다르듯 사람에게도 각자의 거리와 시간이 필요하고, 식물을 옮겨 심은 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필요하듯 삶의 변화 역시 적응의 시간을 요구한다는 식이다. 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장치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함은미 작가는 “이 책은 단순히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너진 삶의 정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한 가드너의 기록”이라며 “지금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잠시 땅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쉬어가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선주 창작제작소 선 대표는 “포레도는 완성된 정원의 이름이기 전에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온전히 마주하게 된 과정의 이름”이라며 “화려한 성공담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살아내는 힘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저마다 ‘이끼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독자에게 따뜻한 그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함은미 작가에게 포레도는 잘 가꿔진 정원이라는 결과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공간에 가깝다. 『포레도, 세 가지 이름으로 지어 올린 정원』은 한 사람이 정원을 만들며 겪은 사건과 감정을 따라가면서 식물을 심고 기다리고 다시 돌보는 행위를 삶을 정돈하는 언어로 옮겨놓는다.
『포레도, 세 가지 이름으로 지어 올린 정원』은 전국 온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